아, 제가 독자 탐구 내용을 배경으로 깔고 이야기했네요 죄송합니다.
Black and White Proposol를 공리로 하는 논리를 흑백논리라고 부를수 있음이 당연하다
또한 흑백논리중 단순언어인것이 형식언어인것이라도 보면 된다.
우리 언어는 보이는대로 해석해야하는것과 아닌것이 있어,
보이는대로 해석해야하는것을 단순언어 (이 경우 언어 해석에 예외가 없이 보이는대로 닥치고 그뜻이다)
그리고 단순 언어가 아닌 언어 (이 경우, 언어 해석에 여러 의외성이 끼어들기에, 단순히 보이는 뜻을 뜻으로 단정할수 없다)가 있다
또한 논리는 장자철학처럼 “갓나서 죽은 아기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으니 팽조(760살이 넘게 살았다는 전설 상의 신선)도 일찍 요절한 사람이다”가 맞을수 도 있지만,
흑백논리에서는, Black and White Proposol을 참으로 하여, x이면서 동시에 x가 아닌것은 불가능하다. (Fun Fact : 흑백논리이면 단순언어임이 논리적 귀결이다)
Hyper-Completeness 일때도 “말의 뜻 ≠ True Mean”마저 True Mean으로 True Mean(결국 전제로 한 참인 문장에서 연역(이때는 초완전땜에 가능)으로 “말의 뜻 = True Mean”)이고 (Hyper-TrueMean Lemma)
Hyper-Completeness 가 아닐때도, “말의 뜻 = True Mean”이므로, 말의 뜻 = True Mean으로 (Formal-TrueMean Lemma)
말의 뜻은 True Mean을 말한다. (TrueMean Theroem)
A. Formal-TrueMean Lemma
B. Hyper-TrueMean Lemma
C. TrueMean Theroem
Proof)
이하에서,
말의 뜻 ≠ True Mean, Hyper-Completeness ⊢ 말의 뜻 = True Mean ⋯ (1)
이하에서, ⊭ 말의 뜻 ≠ True Mean ⊢ 말의 뜻 = True Mean
(1), (2) ⊢ 말의 뜻 = True Mean
Q.E.D.
항상 True Mean만 말의 뜻임을 증명하자,
True Mean이 뜻이 아닌 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말은 True Mean이 뜻이 아니라는 뜻이 True Mean이 된다
이것이 Paradoxic Lemma다
이하에서 Hyper-Completeness에 따라 참인 경우와 거짓인 경우로 나누어 논증하자.
상황 1. Paradoxic Lemma에서, Hyper-Completeness인 상황
Paradoxic Lemma가 참이될수 있으므로, Hyper-TrueMean Lemma가 참이다
상황 1 종료
상황 2. Paradoxic Lemma에서, 비 Hyper-Completeness인 상황
Paradoxic Lemma이 모순이므로, 전재인 “말의 뜻 ≠ True Mean”이 거짓이다.
따라서, Formal-TrueMean Lemma가 참이다
상황 2 종료
이하에서,
상황 1, 상황2에 따라, 연역, 항상 True Mean이 말의 뜻이 된다.
따라서, TrueMean Theroem이 참이다
Q.E.D.
Exceptless ⊢ 말의 뜻 = Shell Mean
Proof)
이하에서, Exceptless ⊢ 말의 뜻 = Shell Mean
임이 당연하다.
앞서 증명한 TrueMean Theroem에 따라,
말의 뜻 = True Mean
Shell Mean = True Mean 이면, 그리고 이때만 Shell Mean = True Mean이다
(쉽게말해 A = B = C니 A = C)
앞으로 말하고자 할 개연성은
Logical Coherence (논리적 일관성(Logical Consistance) • 논리적 맥락성 • 논리적 개연성)
도 어느정도 맞고
Likelihood도 어느정도 맞다
그러나 Logical한 측면의 plausibility로 번역하는개 옳다.
귀납 추론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두 람다성 우연술어의 정의)
L♡x : L”x의 개연성이 타당하다 할만하다.”
L○x : L”x는 보편적이다.”
그리고 해당 언어 L은 논의 대상인 언어로써 생략하여 다음과 같이 적을수 있다.
♡x : “x의 개연성이 타당하다 할만하다.”
○x : “x는 보편적이다.”
개연성의 보편 원리)
“O○(♡x)”
(단. 양상논리에서 당위논리의 경우에는 □
기호 대신 O
기호를 쓴다는점을 기억하자.)
당위적으로, 마땅히, x 개연성이 타당하다 할만하다는 판단은 보편적이다.
즉, 개연성은 보편성을 가진다.
보편성은 그 언어에 속성이다.
언어가 변하므로, 보편성이 변한다.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언어가 많이 변하는지 세삼 체감하게 된다.
일상•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보편이 그토록 짧은시간에 많이 변한다는걸 느끼게 된다.
다음 문장을 보자.
Φ(x) : “x는 논리적이다.”
논리라는것의 실체는 x s.t. Φ(x)이다.
논리 = x s.t. Φ(x)다.
당연하다. 동명사꼴로 만들었으니까.
따라서, 논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 문장
“Φ(Φ(x))는 옳다”
이 옳다고 말한대로여야 한다.
즉, 언어는 논리를 가지기에, 다음이 되는거다.
Φ(x) : “x는 보편적이다”
보편 = x s.t. Φ(x)
이때,
“보편은 논리적이다”는 보편논리적으로 참이다.
즉, 논리적이라는것의 어감에 모두가 이치에 맞는것으로 동의할만한것이다는 어감이 있다.
그게 왜 참인가?
논리 : “말이나 글에서 사고나 추리 따위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과정이나 원리.”
그렇다. 논리적이라는것이 이치에 맞으니까 그런 어감이 드는거다.
비-예외 논리에서의 확장성과 그 원리에 대해 다뤄보자.
먼저 이 글은 핵심적인 본론만은 담기 위해서 서론을 삭제하고 여러 본론들에 대한 결론으로 글을 쓰는 구조이다.
또한 글을 쓸때 있어 나는 가끔 어감에 의존하는 직관적 표현으로 논리적으로 받여질경우 그냥 그 말을 채택해서 적기에, 엄밀하지 않은 표현에 대해선 주석을 남겨놨을것이다.
사실 그런던 대게 규칙도입계 구현의 “컴펙트지지”라는 Alkalic적 논리 해석방식으로 서술되어 그러는데, Alkalic에 대해선 외부 자료이니 이 글에 대한 작성이 끝났을때 레퍼런스에 적혀있을태니 참고하라.
미안하게도 Alkalic이란 내가 만든 체계이다.
추가적으로 지적받은 점에 대해 적자면,
이 글은 수학같은 연역논증만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꽤나 편협함을 깨닫게 할것이며
수학과 Alkalic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필요하고,
공리계가 가정되지 않았는데 (공리계적인 논리에 대해) 비논리적인 대화가 되는데
그 대화가 존재하므로 공리계가 객관적인지 의문을 삼는다는점 명시해두겠다.
작성중…
새상에 참과 거짓으로 구분되는 논리가 가장 객관적이냐는 질문에,
세상에나 요즘 4차 산업혁명 시대 2025년 사람들은 정신나갈정도로 그렇다고 믿는것 같다.
다소 모호해보이는 “불가지”라는 명제에 대한 판단에 대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며,
고대 인도 논리학의 “참도 거짓도 아님”에 대해 모호하다 느끼며,
인류의 위대한 지성사의 자랑스러운 과거 정도로 치부한다.
심지어 Veritaserum이라는 훌륭한 과학 유튜버는,
Russel과 Whitehead의 Mathmatica Principia에 대해,
매우 정밀해서,
불분명한 Fuzzy Logic들이 머리를 감싸며 도망갈것 같다고 말하니
얼마나 개탄스럽나.
에초에 왜 그러한 수학 규칙이 참이되는지에 대해,
누군가는 “선험적인 참으로써 우리 모두가 당연히 그렇다고 받아들일 지식이기에”라고 하며 누군가는 “경험적인 근거로써 당연한 정리로써 수학에 박힌것임”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대해 그 말이 나온 시대상에 따른 안타까운 착각이라고 본다.
과연 수학이 선험이라면 왜 누구는 머리를 싸매고 왜 누구는 선천적인 지식조차 없나?
또, 모든 논리가 다 지성으로 해결될수 있어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나아가야 하니
모든 문제가 “이성적”인 방법으로 풀려야해서 “불완전성”을 무시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성을 즐거워하며 동시에 불완전성이 “비이성적”이라고 해야하나?
하… 너무 화가 나서 말이 봄 공격적이었다.
그런건 이성적이지 않은건데 말이다.
“살아봤더니 새속이 좋아지더라, 혹은 연역적 논증이나 과학적 탐구가 믿을만하더라.”거나
“과연 이러한 시대상에서도, 굳이 고집부려서 글을 수리논리로 부숴서 생각하길 거부할것이냐?”하는 질문에 대해서,
“그건 니 인생 경험이고, 다른 인생도 폭넓게 들어보고 살았냐? 짜샤?”라고 묻는다면 어찌할것인가?
물론 나라고 잘나지 않는다. 지금 잘난것처럼 말하는 내 말투도 크게 문제다.
내가 살아보니까 보수적인 것들도 틀리진 않았다.
언어적인 것도 충분히 논리를 가진다,
아니 그전에 논리라는것이 에초에 가정되기 이전에 성립되지 않는
그 논리라는 대상은 누가 겪어서 만들거나 가르쳐주거나 구체화되어서 있는것이지
공리계나, 타당한 발견이나, 용어정의나, 그것에 대한 사전 지식 • 사전 지식으로써의 생각한 기술적 경험 없이 과연 그런게 존재하는가?
나는 확고하게 발표한다.
언어는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의 그 윤리와 그 논리를 가진다.
그러니까 우리의 생각에서 윤리와 논리는 언젠가 필연적으로 발생한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그런것이 존재하여 우리 사고의 근간을 이루며
생각을 초월해서 그 생각에 같혀 알을 깨지 않고 순수히
언어라는 달걀 그대로 봤을때, 당연히 생각에서 그런거 없다.
그런건 다 허상이고, 달걀 밖의 뇌절로 간 구간이다.
특히 논리에 대해서는 그것이 언어 안에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왜냐고? 그 주장을 뒷밭힘하는 근거로서 그 평가가 그 논리에 대한 평가가, ‘옳다’는 평가값이 ‘x는 옳다’의 존재론적 언질이기 때문이다.
논리가 언어에 의해서 생기니 수학 언어는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바보같이 자신이 속박되어 어디선가 들고 온 정의를 숭배하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 L에 대해 그 진리평가함수공간 Func(L*, 𝔹)이 있다면 어떤 긍정 yes에 대해, 논리적 동등 • 에 대해 (f(p • v) • yes) (단. yes ∈ 𝔹)에서, (f(p) • v) (단. v ∈ 𝔹)로 평가될 것이고, 이러한 당연한 수학적 정리에 따라서, 다치논리를 설명하는 모형이 있기에 다치논리 이론은 타당하다.
이때 배중률을 만족하지 않는 논리는 출력값이 집합이면 되므로 그띠 𝔹는 모든 원소가 집합인 집합족이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 다가함수가 된다. 따라서, 다가함수-다치논리는 타당하다.
공리계라는것이 믿을만하다는건 어떻게 보일수 있을까?
왜 공리계에 기반하여 참인 명제로 증명하거나 자연연역을 통해 당연한 방법으로만 증명하는 논리가 믿을만할까?
과연 아름다운 공리계가 믿을만할까?
유클리드때부터 내려오는 정의-공리-증명 방식의 추론에서 중요한 점이 있다. 추론 규칙은 타당해야 하기에 정리여야 하므로, 공리계 기반 추론은 공리에 의존한다.
즉, 공리계 논리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논리는 공리에서 시작되며, 공리가 논리를 만든다.
예컨데 공리를 가정하지 않으면 모든 수학 체계와 그 논리를 가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공리 없이는 논리도 없다. 따라서 공리시스템에 있어 절대적인 세팅값인 공리는, 그 시스템의 규칙이다.
공리는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방하다. 논리는 전부가 이니고, 논리는 멍청한 공리라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규칙에 따른 결과로써 논리가 나오는것이지, (참고로 지금은 공리시스템의 논리를 논하고 있음) 논리는 절대로 객관적인 대상이 아닌것이다!
물론 수학 언어가 논리를 만드니 맞냐고 치면, 연역적인 수학 언어는 경험론적 전체론에 따른 연역적 정의와 출발이 막힘에 따라, 완전히 연역적인 수학이란 존재할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 수준에서 절대적 시작점으로, 그 역사와 무관히 정의하여 강제한 논리가 바로, 공리인것이다.
이러한 규칙이 공리적 학문을 만들고,
규칙 없이는 아무 (공리적) 논리를 작성할수 없는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리계를 분석하기 위해서, 규칙도입계를 구성하고 실험하여 얻은 경험으로 완전히 연역적인 시도를 할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형식과학인 수학의 탐구방법과 일치하고,
규칙도입계 상에서 실험된 성질이 바로 규칙도입계-공리계의 성질인것이다.
애기들이 장난으로 규칙도입계용 공리계를 만든다 하여도 절대로 그것을 비판할수 없다
너무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 어린아이의 규칙 도입계용 공리나 수학 공리나 다 멍청한 주장이자 가정이며 (공리적) 논리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주장이다.
완전 개찐도찐이다.
규칙 도입계는 필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규칙을 도입하는 체계를 만들까?
간단하다! 규칙을 설정하고 그게 참이 되는 논리적 논의 영역이 규칙도입계다.
에초에 이 개념은 어린 아이의 규칙놀이와 공리계의 차이를 논하려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시시콜콜하고 멍청한 짓은 관심이 없다. 그런걸 구분하는건 멍청한 대중이나 하는것 같다. (대중이 멍청하다는 말은 아니다. 인스타나 이런데에 가끔식 멍청이들이 좀 있다.)
규칙도입계란 관계열 Eₖ에 대해 k-tuple (t₁, …, tₖ)에 대해, Eₖ(t₁, …, tₖ)가 참이라면 E₍ₖ₋₁₎(t₁, …, t₍ₖ₋₁₎)이 참이고, E₂(t₁, tₖ)가 참이며 E₂(x, y)란 x = y일때 참인 동등관계열 Eₖ에 대해, rule의 U를 딴 관계열 Uₖ에 대해, 컴펙트 지지인 Uₖ의 정의역이 Eₖ이고 (단. 이 해설은 엄밀하진 않은게, Uₖ가 Eₖ에 포함된다 보는게 맞다. “컴펙트 지지인 Uₖ의 정의역이 Eₖ이고”는 엄밀하지 않다.) Uₖ(t₁, …, tₖ)가 참이라면, U₍ₖ₋₁₎(t₁, …, t₍ₖ₋₁₎)이 참이며 술어형 관계 U₁(x)가 참이려면 x가 참이여야한다. rule의 L을 딴 관계열 Lₖ에 대해, Lₖ(Lang, t₁, …, tₖ) : Lang”U(t₁, …, tₖ)” 인 Lang어 술어이므로, 자연어 술어여서 술어논리에서는 우연명제이다.
규칙도입계-공리계란 다음을 말한다. “규칙도입계 공리계에서 참의 정의는 Lₖ가 항진인, 즉 Lₖ가 참이다”라는 정의의다. 엄밀한 표현으론, T = Lₖ이며, 정의로 적어놓은 사실상의 공리이다. 단. 이 내용은 공리이므로 정의하는데 있어서 경험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가정되는 방식이다.
이 공리계는 내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만든 도구일 뿐이다.
이제부터 문자열 변수를 쉽게 쓰는 표기법으로, “○”를 도입하겠다. 문자열 집합 타입의 문자열로써 쓰려니까 존나 힘들어서 x라고 표기하기보다, “○”라고 표기하는게 나을것같다. 에잇 에초에 수학자들처럼 표기하는거니까 뭐!
그렇게 되면 배중(률을 만족하는 언)어 L에 대해, 크립틱(S, L)이 잘 정의된다. 크립틱(Kriptic)이란 이름의 명명에는 크립키 모형같다는 비유법에 있다.
배중어(L) : “L ⊨ 배중률” 크립틱(“○”, L) : L”○”
그러면 다음을 알 수 있다.
자연어 L = 한국어 일때,
내가지금먹고싶은거(x) : L”x는 필자가 지금(2025.Aug.08 18:02)먹고싶은 음식이다”
내가지금먹고싶은거는 우연명제이다.
참고로 내가지금먹고싶은거는 L”불고기 뺀 콤비네이션 마르게리따 피자”다.
아 쓰다가 이미 18:03이 됬으니 어떻게 펙트다 ㅋㅋ
저런식으로 어떤 고지식한 사람이 “난 이것만 먹을꺼야”라고 할때 그 음식 고르는것에 대해, 명제이지만 우연명제가 존재하여 잘 정의할수 있다는, 잘 정의된다고 취급하는것에 대한 문제에 대한 비판을, 고지식한 사람의 음식리스트 비유라고 한다.
내가 만든 비판이다. (내가 자기 주관이 강하긴 하다만 고지식한 사람의 음식리스트 비유만큼 고지식하진 않다… 나는 변덕도 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고지식한 사람은 그걸 절대 안바꾸거나 주어진 시간동안 바꿀 가능성같은건 없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한거라서, 지독하게 고지식하다는 점.)
이런식으로 정언논리상의 우연명제를 양화논리로 옮겼을때, 그 우연논리는 논리식을 쓰지 않는 한 험밀하지 않은 임시적이거나 비표준적인 방법이고, 불가피한 경우에도 처치-튜링 명제 이외에 잘 사용되지 않는 방식이다.
이러한 우연명제의 사용이 가능한데 실재로 사용시에는 이것을 회피하길 마련이다.
이것은 양화논리의 Ridiculous한 회피기제다.
참고로 배중률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그것에 대한 판단 언어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므로 (왜냐하면 방정식의 경우 해가 두가지라서 배중률을 거부하며, 이러한 경우에도 수학은 판단 가능하단건 어떤 함수로 모뮬화된 튜링완전적 혹은 비결정추상언어적 술어 Φ에 대해, Φ(x) : P(x) = 0인 방정식은 Alkalic에서 증명했든 타당히 이것이 명제와 언어의 성질을 가지는 논리 판단에 대한 의미론적 동등을 통한 당연한 본질에 대한 한가지 해석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기에, 그 배중율을 거부해도 수학은 판딘 가능하단게 당연하다.)
아, 참고로, 술어논리는 술어에 자연어를 적을수 있지만 권장되지 않는다. 재대로 정의되기 위해서다. 얼마나 이상한가?… 잘 정의되지 않을거면 그 명제를 없에야하는데… 그러나 수리논리는 수학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아리스토텔레스를 탓할수밖에 없다. 에초에 그런걸 정의할수 있게 논리학을 만들었으니 토달지 말아야한다.
다음 술어를 보라.
P(v) : ◇v Q(v) : “v일수 있다”
만약 Q의 언어가 양상논리라면 P = Q이다.
그러면 Q의 언어가 양상논리랑 상호번역되는 언어인 경우
Φ = P = Q 로 정의하겠다.
그러면 다가논리 주장명세에서, “언어는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의 그 윤리와 그 논리를 가진다”는 명제에 대해, “그 주장을 뒷밭힘하는 근거로서 그 평가가 그 논리에 대한 평가가, ‘옳다’는 평가값이 ‘x는 옳다’의 존재론적 언질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달았는데,
이는 형식언어를 통해서 곧 말할 많은 방법을 통해 잘 정의된 자연어 혹은 언어 L에 대해, 그 우연양화논리적 해석에 있어서, 존재할수밖에 없는 “지옥”같은 상황에 빠진다.
즉, 언어 L은 UG에 의해 해석되기에 모든 수학 외 언어는 자연어니, 이러한 자연어 우연명제를 UG때문에 막을수도 없는데, 기괴한 양상논리의 존재성은 이 우연명제의 이용으로써 나타나므로 필연(항진 정리)이다.
에초에 그거에 맞는 언어적 모델을 구축하는건 식은죽먹기다.
Necesurry(x) : □x : ModalLogicTranslatibleLanguage”x는 필연이다 : ¬◇¬x Necesurization(x) : Theorem(x), x ⊢ □x Able(x) : ◇x : ModalLogicTranslatibleLanguage”x일수 있다.”
따라서 규칙도입계-공리계를 도입하면 이는 참임을 알 수 있다.
에초에 규칙도입계를 수학에서 쓰려면, 크립키-모델을 이용하기 위해 양상논리를 활용하면 된다.
UG의 존재와 규칙도입언어의 특성과 수학에서 서술할수 있는 언어평가의 특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양상논리같은 비표준 논리도 “언어는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의 그 윤리와 그 논리를 가진다”는 명제에 대해, “그 주장을 뒷밭힘하는 근거로서 그 평가가 그 논리에 대한 평가가, ‘옳다’는 평가값이 ‘x는 옳다’의 존재론적 언질이기 때문이다”라는 표준수리논리에만 적용되는줄 알았던 명제가 그 확장으로 언어에 대해 존재할수밖에 없고 이는 언어에 창발성에 기인한다.
어떤 무언가를 서술하는 글이 담긴 책이 있다 하자. 그 글에 대해 참으로 두고 그것에 대해 설명한다면, 그 글에 대해 거짓으로 두고 그것에 대해서도 설명해야한다.
한마디로 그 대상에 대해서 언어로써 전달 가능한 생각으로써 기능할 조건을 그 글에 요구한다면 필연적으로 그 글은 변별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모든 언어적인 단순무식한 생각과 그 “주장함”(주장하는 행위)는 변별이라는 방법으로 구성할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예외에 대해 서술하는것도 당언히 가능하다.
예외라는 측면에서 언어에 대해 변별한다면, 필요 이상으로 논리적인 생각이겠지만,
빈틈없는 주장으로써는 훌륭한 방법이고 선대의 지혜로써 고안된 추론방법이다.
물론 그 추론 방법은 지금에 이르러 완전히 폐기하고 뉘앙스만 언어화되어 이용되어 독립되게 만들어 그 원인을 잊고 눈을 가리비만 말이다.
어떤 참으로 말하는 AFFRIMO(긍정)적인 대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빈틈없는 오랜 고민끝에 나오는 생각으로 ontological한 뉘앙스의 주장으로 새우고, 어떤 거짓으로 말하는 NEGO(부정)적인 대상을 예외적으로 매꿔주는 완성까지 있다면,
그건 휼륭한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 규칙체계를 만든것이고 아주 잘 만들어진 노력의 산물일것이다.
내 말은, 이런게 일반적이므로 있고, 더 나아가,
이러한 명쾌한 이분 체계에 대한 해설로써 긍정 존재를 강제해주고 부정 예외를 추가해주는 구조를 만들수 있으며,
그것이 왜 수학도들도 타당하다 받아들여야 하는지 말하고자 하는거다.
존재강제구조란 논의계층 h와 그 아래의 계층 aₕ에 대해, aₕ의 결함이 h로 전달되는걸 “반역”이라 명명할때 반역되지 않으며, h가 일반으로써 설정되는것을 말한다.
우리 언어이 변별과 일반 구조에 의해서, 아무리 엄밀한 체계라도, 예외를 이용하여 서술하는 아이디어를 피할 수 없으며, 이를 보이지 않게 녹이는 수학같은 방법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예외도 타당한 논리다.
심지어 기호증명용으로 구성도 되는 구체적이고 규칙적이고 엄밀한 체계다.
어떤 존재론적 언질적 존재를 만들어주는, 즉, 어떤 성질에 대한 한정까지 포함한 존재를 민즉어주는것.
먼저 ∃Φ(x)와 ∃x s.t. Φ(x)의 의미를 보자. 참고로 두가지는 같은 의미다.
항진술어 T에 대해서도, 함축기호 • 에 대해,
(∃Φ(x))(T(x))라는 말은 곧 (∃x s.t. Φ(x))(T(x)) 이며, (∃x)(Φ(x) • T(x)) 이므로, (∃x)(Φ(x) • T(x))이니 특히 이경우 (∃x)(Φ(x))라고 잡힌것이다.
자, 저 논리식의 의미를 봤으니, 이제 저런 가정을 하는것에 대한 서술로 존재론적 언질적 존재를 만들어주는 존재성애 대한 논의의 기호적 표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이런 존재를 설정해주는 공간으로써 높은 위계와 그것에 대한 응용 공간의로써 낮은 위계로, 논리에 그 위와 아래가 있다면, 계층적으로 예외를 이용한 논리의 서술의 일관성 문제가 해결될것이다!
존재를 설정해주는 공간을 어쨋든간에 절대적으로 존재하게 강제한점에서 기묘하고 신묘하다는 의미에서 실존에 비유하여, 실존공간이라 하고 h라 하겠다. 그리고 그 실존공간 h에 대해, 논리적으로 논의하는 그 논리에서의 논의공간, 즉 현실인 a를 aₕ라고 하겠다.
h와 aₕ의 정의는
V(∃Φ(x), h) → V(∃Φ(x), aₕ)
이며, 이를 계층 관계라고 한다.
논리에 있어 배중률이 없는 언어가 있을수 있다는것은 이미 이야기했으니 배경지식으로 탑제하고 태클걸지않고 갈수있다는건 당연하게 알것을 선언하겠다.
h 규칙도입계(참고로, 규칙도입계로 동작하는 이유는 그 언어의 공리계가 생겼다면 그런거라 지금 서술 방식을 규칙도입계처럼 다루는거여서 그렇지, 규칙도입계라는 표현은 엄밀하지 않고, 논의계층이라는 말이 엄밀히다) 논리에 대해 aₕ 규칙도입계는 h에서 한 선언을 부정하여 h를 바꾸는 “반역”을 할 수 없으며 aₕ에 대해 선언은 h가 해줘서 제어 가능하고 자신은 결과를 받지 않지만, aₕ에서는 스스로 예외규칙을 만들어 h에는 “반역”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예외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예외를 가지는 언어는 계층을 가지고, 무한한 예외규칙의 경우, 계층은 무한하게 되어 구성된다.
Tip : 컴펙트지지란, 해석학(수학)에서, 따로 정의하지 않는 구역에서 0이 되는 함수를 “컴펙트지지”라고 부르며, Alkalic에서 정의시 자주 활용한다. 바로 분기문을 컴펙트 지지 기반으로 만든다. Tip : 위 팁은 수학을 즐기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하니 읽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런 하단 팁에 적어논것.
최근엔 저는 “보편과 특수”는 존재강제구조의 대표적인 동형을 이루는 구조로, 보편은 ♡(♡x ↔ x)로, 만물의 공통적 이상 (ideal) 새계이며, 특수가 차이점 새계로, 보편-특수, 공통-차이, 규칙-변칙같은 대조되는 요론 개념들은 존재강제구조와 동형인 구조로, 형이상학적 이상인 보편, 공통, 규칙이 존재새계 최상위로, 반대되는 예외인, 특수, 차이, 변칙이 현실새계 최하위로, 이러한 “보편적 사고 공간”이라는 이상적 공간 U_G에서, 크립키 모형 상에서, ♡Φ : V(U_G , Φ)이고, 개연성 ♧는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Meme이 규정한 참인 공간 U_M에서, ♧Φ : V(U_M, Φ)인것으로, ♡(♧Φ → ♡Φ)로 보편은 개연성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보편 역시 하나의 Meme으로, 이러한 Meme에 의한 의미 규정에 의해 많은 비형식적 논리가 구현된다고 봅니다.